수원 화성의 역사
수원 화성( 華城)은 조선 후기 (제 22대) 정조 때인 1794년 착공하여 1796년 10월 10일(음력 9월10일)에 준공 되었습니다. 팔달산의 채적장에서 채굴한 벽돌로 쌓은 축성 공사에는 다산 정약용이 고안한 거중기가 사용되었습니다. 정조가 그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에 옮기면서 축조한 성으로 거중기, 녹로 등 신기재를 사용해 만들어졌습니다. 수성은 군사적 방어 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보유하고 있으며 실용적인 구조로 되어있어 동양 성곽의 흑미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당대의 학자들이 충분한 연구와 치밀한 계획에 의해 동서양 축성술을 집약하여 축성하였기 대문에 그 건축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조는 수원의 이름을 '화성'으로 고침으로써 신도시의 지향점을 제시하였습니다. 화성 성곽은 18세기 동아시아 성곽을 대표하는 빼어난 건축물의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고, 군사, 행정, 상업 기능을 두루 갖춘 신도시로서만이 아니라 자연과 어우러진 '생태도시(ecological polis)'로서 새롭게 주목됩니다. 수원의 또 다른 이름은 '유천성'입니다. 유천은 수원의 명소이자 상징적인 자지형물이었습니다. 화성 성곽은 버들잎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는데 거기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세계문화유산 유네스코 등재 및 명소
수원 화성 혹은 화성은 대한민국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장안동에 있는 길이 5.52킬로미터의 성곽입니다. 1963년 대한민국의 사적 제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수원 화성은 한국전쟁 당시 일부가 파괴되어 유네스코에서 등재를 거부 하였지만 화성을 계획할 당시 그림과 글로 설계도와 관련 내용을 기록해둔 수원화성의궤가 남아있어 이를 바탕으로 복원 하였기 때문에 역사적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었습니다. 화성은 한국 성의 구성요소인 옹성, 성문, 암문, 간대, 체성, 치성, 적대, 포대, 봉수대 등을 모두 갖추어 대한민국의 성곽 건축 기술을 집대성했다고 평가됩니다. 지형에 맞추어 읍성과 산성의 구조가 모두 존재하도록 축조 되었습니다.
- 장안문 : 수원화성의 북문인 장안문은 성곽의 주요 출입구로 웅장한 규모와 아름다운 건축 양식이 인상적입니다.
- 팔달문 : 팔달문은 수원화성의 남문으로 수원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습니다. 주변에 상점과 시장이 있어 여행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를 제공합니다.
- 화서문 : 수원화성의 서문으로 성곽을 따라 걷다보면 만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성곽의 견고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 창룡문 : 수원화성의 동문으로 다른 성문들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성곽 동쪽 끝에 위치해 있으며 주변 자연경관이 아름답습니다.
- 화성행궁 : 정조대왕이 수원화성을 순찰할 때 머물렀던 궁궝로 성곽 내부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조선 시대의 궁궐 문화 체험을 할 수 있으며 다양한 역사전 전시물들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 서장대 : 서장대는 수원화성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지휘소로 이곳에서 성곽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습니다. 성곽을 따라 올라가며 수원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해 보시는건 어떨까요?
수원역에서 수원 화성 가는 방법으로는 수원역을 나와서 북쪽으로 가면 북측 정류소가 나옵니다. 버스 11번, 13번, 35번, 36번 등을 이용하여 화성행궁(화성) 근처에서 하차하시면 됩니다. - 택시(10~15분 소요 / 5,000~7,000원 발생), 도보 (30~40분 소요), 자전거 이용